네트워크란 무엇인가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면 1초도 안 되어 친구 화면에 뜬다. 그 사이 사진은 전파가 되었다가, 구리선의 전압이 되었다가, 유리실 속 빛이 되어 수십 대의 장비를 거친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한 단어로 “네트워크”라 부른다. 이 장은 책 전체의 지도다. 왜 모든 것을 연결하려 하는지, 인터넷은 어떻게 생겼는지, “빠르다”는 말에 숨은 두 가지 뜻은 무엇인지부터 살펴본다.
- 모두를 직접 잇는 것과 교환기를 두는 것의 차이를 선 개수로 계산한다.
- 노드·링크·토폴로지라는 말로 어떤 네트워크든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 버스·링·스타·트리·메시 토폴로지의 비용과 고장 내성을 비교한다.
- 집에서 해외 서버까지, 인터넷이 “망들의 망”으로 이어진 구조를 따라간다.
- 대역폭과 지연을 구분하고, 전송 시간에서 어느 쪽이 지배하는지 판단한다.
- 빛의 속도로 거리별 최소 지연을 어림한다.
- 이 책 26개 장이 어떤 층을 이루는지 지도를 머릿속에 그린다.
연결이 힘이다
1876년 전화가 발명된 직후, 전화기를 산 사람은 통화할 상대의 집까지 직접 전선을 깔아야 했다. 두 집이면 선 한 가닥으로 충분하다. 세 집이면 세 가닥, 네 집이면 여섯 가닥이다. 동네 사람 모두가 서로 통화하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1880년대 뉴욕 거리에는 전신주마다 수백 가닥의 전선이 거미줄처럼 걸려 하늘을 가렸다.
해결책은 동네 한가운데 교환기(switchboard, exchange)를 두는 것이었다. 집마다 교환기까지 선 하나만 깔고, 교환원이 플러그를 꽂아 원하는 두 집을 그때그때 이어 준다. 1878년 미국 뉴헤이븐에 첫 상업용 전화 교환국이 문을 열었고, 이 생각은 오늘날 모든 네트워크의 뼈대가 되었다. 인터넷의 스위치와 라우터도 결국 “자동화된 교환원”이다.
모두 직접 잇기 vs 교환기 하나
시뮬레이터에서 “가능한 통화 쌍”은 직접 연결의 선 수와 똑같이 n²에 비례해 늘어난다. 장치가 하나 더 붙을 때마다 기존의 모든 장치와 새 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더넷을 발명한 로버트 메트칼프는 이 점을 들어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했다. 이를 메트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이라 한다. 엄밀한 법칙이라기보다 경험칙이고, 모든 연결이 똑같이 가치 있지는 않으므로 실제로는 n²보다 느리게 는다는 반론도 많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연결된 사람이 많을수록 연결에 끼고 싶은 사람도 많아진다. 메신저, 전화, 인터넷이 한번 커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이유다.
교환기 방식에서는 선(비용)은 n에 비례해 늘고, 쓸모(연결 가능한 쌍)는 n²에 비례해 는다. 이 비대칭이 네트워크 사업의 핵심이다. 전국을 잇는 데 드는 돈은 크지만, 일단 이어 놓으면 쓸모가 비용보다 훨씬 빨리 커진다.
노드와 링크, 그리고 모양(토폴로지)
어떤 네트워크든 점과 선으로 그릴 수 있다. 점은 노드(node), 즉 데이터를 보내거나 받거나 넘겨주는 장치다. 선은 링크(link), 즉 두 노드를 잇는 통로다. 링크는 구리선(4장)일 수도, 광섬유(5장)일 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11장)일 수도 있다. 점과 선을 어떤 모양으로 배치했는지를 토폴로지(topology, 연결 형태)라 한다.
노드는 하는 일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이 책 내내 나오는 주인공들을 미리 만나 두자.
| 장치 | 하는 일 | 택배 비유 | 자세히 |
|---|---|---|---|
| 호스트(host) | 데이터를 처음 만들고 마지막에 받는 끝 장치. 휴대폰, 노트북, 서버. | 보내는 사람·받는 사람 | — |
| 스위치 | 같은 건물·같은 망 안에서 프레임을 받아 해당 포트로만 내보낸다. | 아파트 우편실 | 6장 |
| 라우터 | 목적지 IP 주소를 보고 다른 망으로 가는 다음 장비를 고른다. | 물류 허브(분류 센터) | 8장 |
| 무선 AP·기지국 | 전파와 유선 사이를 잇는 다리. | 하늘길 정류장 | 13·14장 |
| 집 공유기 | 라우터 + 스위치 + Wi-Fi AP + 주소 변환(NAT)을 한 상자에 넣은 복합 장치. | 현관 겸 우편함 | 7장 |
토폴로지는 비용과 튼튼함 사이의 맞바꿈이다. 링크를 많이 깔수록 비싸지만, 하나가 끊겨도 돌아갈 길이 있다. 아래에서 직접 선을 끊고 장비를 고장 내 보자.
토폴로지별 고장 견디기: 선이나 장비를 눌러 고장 내 보세요
같은 아파트 안에서 주고받는 편지는 1층 우편실(스위치)이 호수만 보고 바로 넣어 준다. 다른 도시로 가는 상자는 동네 대리점을 거쳐 대형 허브(라우터)로 간다. 허브는 상자의 주소를 보고 “부산 방향 트럭”에 싣는다. 허브끼리는 여러 갈래의 고속도로(메시)로 이어져 있어서, 한 도로가 막혀도 다른 길로 돌아간다.
인터넷: 망들의 망
“인터넷”이라는 단일한 기계나 회사는 없다. 인터넷(internet = inter + network)은 이름 그대로 네트워크와 네트워크를 이은 것이다. 우리 집 공유기 안쪽의 작은 망, 통신사의 거대한 망, 대학·기업·클라우드 회사의 망이 각자 따로 운영되면서 서로 약속된 방식(IP, 7장)으로 이어져 있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망이 전 세계에 약 7만~8만 개 있고, 서로 경로 정보를 주고받으며(BGP, 8장) 하나처럼 동작한다.
- 접속망: 집에서 통신사 건물(국사)까지의 마지막 구간을 접속망(access network)이라 한다. 한국은 대부분 광섬유가 집이나 아파트 통신실까지 들어오는 FTTH 방식이고, 휴대폰은 기지국(14장)이 이 역할을 한다.
- ISP: 인터넷 접속을 파는 통신사를 ISP(Internet Service Provider)라 한다. 각 ISP는 전국을 잇는 고속 라우터망, 즉 백본(backbone)을 운영한다.
- IXP: 서로 다른 망이 트래픽을 주고받는 공동 교환 장소를 IXP(Internet Exchange Point)라 한다. 여러 회사의 라우터가 한 건물에 모여 거대한 스위치로 이어진다. 이게 없으면 옆 회사 망으로 가는 데이터가 해외를 돌아올 수도 있다.
- 해저 케이블: 대륙 사이 데이터의 99% 이상은 위성이 아니라 바닷속 광케이블로 간다. 전 세계에 500개 안팎의 해저 케이블이 깔려 있고 총 길이는 100만 km가 넘는다(5장). 한국은 부산·거제·태안 등의 육양국에서 일본, 중국, 동남아, 미국으로 이어진다.
택배 상자는 우리 집 → 동네 대리점(접속망) → 지역 허브 터미널 → 간선 트럭으로 전국 허브(백본) → 상대 지역 터미널 → 배송 기사 → 받는 집으로 간다. 택배사가 다르면 중간 거점에서 물건을 넘겨준다(IXP·피어링). 해외 직구 상자는 항구에서 배(해저 케이블)를 탄다. 그리고 인기 상품은 아예 동네 창고에 미리 쌓아 둔다(CDN, 10장). 인터넷이 다른 점은 하나다. 상자가 1초에 수백만 개,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그럼 휴대폰에서 보낸 요청 하나가 실제로 어떤 장비를 거치는지 한 단계씩 따라가 보자.
요청 하나의 여행: 내 폰에서 서버까지
대역폭과 지연: 도로의 폭과 길이
“인터넷이 빠르다”는 말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뜻이 섞여 있다.
- 대역폭(bandwidth): 1초에 보낼 수 있는 데이터의 양. 단위는 bps(bit per second). 집 인터넷 1 Gbps는 1초에 10억 비트를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도로의 차선 수에 해당한다. (2장에서는 같은 단어가 신호가 차지하는 주파수 폭, Hz를 뜻하기도 한다. 둘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 지연(latency): 비트 하나가 출발해서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 도로의 길이에 해당한다. 보통 갔다가 답이 돌아오는 왕복 시간(RTT, round-trip time)으로 잰다. 게임의 “핑”이 바로 RTT다.
통신 속도는 비트(b) 단위, 파일 크기는 바이트(B) 단위로 쓰는 관례가 있다. 1바이트 = 8비트이므로 500 Mbps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는 최대 속도는 약 62.5 MB/s다. 여기에 포장재(헤더, 3장)와 재전송(9장) 몫이 빠지므로 실제로 체감하는 처리량(throughput)은 그보다 조금 낮다.
전송 시간 계산기: 지연이 지배할까, 대역폭이 지배할까
트럭 비교를 켜고 1 TB를 100 Mbps로 보내 보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네트워크로는 하루 가까이 걸리지만, 저장장치를 트럭에 실으면 5시간이면 된다. 대역폭만 따지면 트럭이 이긴다. 컴퓨터 과학자 앤드루 타넨바움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테이프를 가득 실은 스테이션왜건의 대역폭을 얕보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물리 매체를 직접 나르는 방식을 스니커넷(sneakernet, 운동화로 나르는 망)이라 부른다. 실제로 클라우드 회사들은 페타바이트 단위의 데이터를 옮길 때 저장장치 상자를 택배로 보내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물론 트럭의 지연은 5시간이라 메신저를 보내기엔 최악이다.
1 TB 백업을 100 Mbps 인터넷으로 보내는 것과, SSD에 담아 트럭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약 5시간) 나르는 것. 어느 쪽이 먼저 도착할까?
전송 시간 계산기에서 “백업 1 TB”를 고르고 대역폭을 100 Mbps에 맞춘 뒤 트럭 비교를 켜 보자.
숫자 감각: 빛도 느리다
지연은 돈으로 줄이기 어렵다. 차선(대역폭)은 광섬유를 더 깔거나 장비를 바꾸면 늘어나지만, 거리를 달리는 시간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빛은 진공에서 1초에 약 30만 km를 가지만, 광섬유의 유리 안에서는 굴절률(약 1.47) 때문에 약 20만 km/s로 느려진다. 1 ms에 200 km,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으로 가는 데 약 1.6 ms다.
게다가 케이블은 직선으로 깔리지 않는다. 해안선과 도로를 따라 돌고, 라우터에서 줄을 서고(23장), 가장 가까운 길이 아니라 통신사끼리 계약된 길로 간다(8장). 그래서 실제 왕복 시간은 직선거리로 계산한 값의 보통 1.5~2배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빛의 왕복 시간
| 시간 | 그동안 빛(광섬유)이 가는 거리 | 네트워크에서 그 정도 걸리는 일 |
|---|---|---|
| 1 ns | 20 cm | 칩 안의 신호 한 박자. 데이터센터 케이블 1 m를 지나는 시간은 5 ns |
| 1 µs | 200 m | 스위치 한 대를 통과(수백 ns~수 µs) |
| 1 ms | 200 km | Wi-Fi 한 구간, 같은 도시 안 서버까지 왕복 |
| 100 ms | 2만 km | 태평양 건너 왕복. 사람이 “느리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 |
| 500 ms | 10만 km | 정지궤도 위성 왕복. 영상 통화가 어색해진다 |
숫자로 보는 한국과 세계의 인터넷
한국은 세계에서 유선 인터넷이 가장 빠르고 촘촘한 나라 중 하나다. 1990년대 말 초고속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됐고, 아파트가 많은 주거 구조 덕분에 광섬유를 집 가까이까지 깔기 쉬웠다. 아래 숫자는 정확한 통계값이 아니라 2024~2025년 무렵의 대략적인 크기 수준이다.
트래픽이 해마다 20~30%씩 늘면 3~4년마다 두 배가 된다. 그 증가분을 감당하려고 광 전송 기술(5·19장)은 한 가닥의 광섬유에 수십 Tbps를 싣는 수준까지 왔고, 데이터센터 스위치 칩(17장)은 칩 하나가 51.2 Tbps를 처리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 엄청난 속도를 떠받치는 반도체 이야기다.
웹(WWW)은 인터넷 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 하나일 뿐이다. 1969년 미국의 아파넷(ARPANET)에서 시작한 인터넷은 1983년 TCP/IP로 통일됐고, 웹은 1989~1991년 팀 버너스리가 만들었다. 메일, 메신저, 게임, 영상 통화, 스마트폰 앱의 통신도 모두 인터넷 위의 서비스다(10·25장).
이 책의 지도
네트워크는 층층이 쌓인 구조물이다. 맨 아래에서는 전자가 구리선을 흔들고 빛이 유리실을 지나며, 맨 위에서는 앱이 “사진 보내 줘”라고 말한다. 각 층은 바로 아래층이 제공하는 서비스만 믿고 자기 일을 한다. 이 생각을 계층화라 하고, 3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 책도 그 층을 따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칩으로 내려간다. 상자를 누르면 해당 장으로 간다.
어느 장부터 읽어도 되지만, 2장과 3장은 뒤의 모든 장이 기대는 기초다. 유선이 궁금하면 4~6장, 휴대폰과 Wi-Fi가 궁금하면 11~15장, 칩이 궁금하면 16~19장으로 바로 가도 좋다. 24장에서는 영상 통화 한 번이 이 지도의 모든 층을 위아래로 오가는 여행을 따라간다.
핵심 정리
- n대를 모두 직접 이으면 선이 n(n−1)/2개 필요하지만, 교환기(스위치·라우터)를 두면 n개로 충분하다. 연결 가능한 쌍은 n²에 비례해 늘어 네트워크는 커질수록 가치가 커진다(메트칼프의 법칙).
- 모든 네트워크는 노드(장치)와 링크(통로)로 그릴 수 있고, 그 배치를 토폴로지라 한다. 링크가 많을수록 비싸지만 고장에 강하다.
- 인터넷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수만 개 망을 이은 망들의 망이다. 집 → 접속망 → ISP 백본 → IXP·해저 케이블 → 다른 망 → 데이터센터로 이어진다.
- 대역폭은 1초에 보낼 수 있는 양(도로 폭), 지연은 첫 비트가 도착하는 시간(도로 길이)이다. 전송 시간 ≈ RTT + 크기 ÷ 대역폭.
- 광섬유 속 빛은 약 20만 km/s, 1 ms에 200 km다. 대륙 간 지연은 물리 법칙에 묶여 있어 돈으로 줄이기 어렵다.
- 네트워크는 신호 → 매체 → 링크 → IP → 전송 → 응용으로 쌓인 계층 구조이고, 맨 아래를 통신 반도체가 받친다.
확인 퀴즈
집 20채를 모두 직접 전선으로 이어 아무 집끼리나 통화하게 하려면 선이 몇 가닥 필요할까?
스타 토폴로지의 가장 큰 약점은?
서로 다른 통신사의 망들이 한곳에 모여 트래픽을 맞교환하는 장소는?
RTT가 100 ms인 해외 서버에서 아이콘(10 KB)을 받는다. 회선을 100 Mbps에서 1 Gbps로 올리면?
광섬유에서 빛이 1 ms 동안 가는 거리는 대략?
정지궤도 위성 인터넷의 지연이 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